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에리히 토프 (문단 편집) == 개전과 함께 대활약 == [[1940년]] 5월 5일부터 U57로 갈아탄 그는 9월 15일에 함장으로 임명되는데,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에리히 토프는 중위 계급장도 떼지 못한 [[대위]] 진급 후보장교일 뿐이었다. 그러나 이미 충분한 조함과 지휘 경험을 쌓은 그에게 계급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에게는 잠수함장에게 요구되는 정확한 상황판단 능력과 두둑한 배짱까지 더해져 U57은 그가 지휘한 이래 2회의 초계 임무를 수행하면서 적함을 6척이나 침몰시키고 있었다. [[1940년]] 12월부터 [[1942년]] 9월 8일에 걸쳐 VIIC형 U보트 U552의 함장이 된 에리히 토프 대위는 항해 도중 [[소령]]으로 승진하기도 했다. [[대서양|북대서양]] 방면으로 1차 항해를 나선 U552는 토프 소령의 노련하고 탁월한 지휘 아래 10회나 초계 임무에 출격하면서 연합군 함선을 30척이나 격침시키며 "대서양의 붉은 악마"라는 별명으로 불리게 된다. [[1941년]] 10월 31일에는 미 해군의 [[클렘슨급 구축함]] 루벤 제임스(USS Reuben James DD-245)를 가라앉히는 무공을 더하며 [[철십자 훈장|곡엽기사철십자훈장]]을 수여받기도 했다. 1942년 10월에는 폴란드의 점령지 고텐하펜(Gotenhafen : 현재의 [[그디니아]])에서 제27잠수함대 사령관에 취임하여 후배 잠수함장들을 가르치면서 한편으로는 최신예 잠수함인 XXI형 유보트의 배치를 서두르는 상급 지휘관이 되었다. 종전이 가까와지던 [[1945년]] 1월에는 [[군목]]의 딸과 결혼하며 잠시 동안 신혼의 단꿈에 젖기도 했지만 잠수함장들이 잇따라 전사하거나 행방불명되며 지휘관이 부족해지자 곧바로 U-2513의 함장으로 임명되었고, [[노르웨이]]의 호르텐 해군기지에서 출격을 대기하던 도중 직속상관인 [[칼 되니츠]] 제독으로부터 독일의 항복 명령을 전해듣고 연합군의 포로가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